KWAK HOON Artist Talk
2022. 10. 22. (Sat) pm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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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1941~ )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곽훈은 미술의 실험을 그치지 않는 치열한 의식의 소유자이다. 또한, 그는 비단 회화뿐만 아니라 도예와 설치 퍼포먼스 등 가히 전방위적 활동을 벌이는 열정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한때 시인이 되길 꿈 꾼 적이 있는 그는 수 백 편에 이르는, 기성시인 못지않은 수준 높은 시들을 남겼다.
곽훈은 단순히 영감과 직관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는 막연한 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 대학시절 약대에서 화학 수업을 들을 정도로 색채에 대한 과학적인 사고의 훈련을 한 바 있으며 굳건한, 지식의 토대 위에서 색채를 다루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는 작가이다. 요즘처럼 혼합재료의 (mixed media) 사용이 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재료학에 대한 연구는 작가가 재료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매우 중요한 선행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곽훈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선구적인 경우에 해당하며, 이는 그의 작품에 대한 분명한 보증인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곽훈에 대한 평가는 전위운동과 깊이 관련돼 있다. 1969년 곽훈은 김구림, 김차섭 등과 함께 ‘A.G(Avant-garde)’ 라는 단체를 결성. 창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전위미술 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다. ‘A.G’그룹은 당대의 엘리트 미술인들로 구성된 전위미술 단체로서 1975년 해체될 때까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후 그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지속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전위의식은 그의 작가적 생애를 관통하는 바탕이 되었다.
곽훈의 예술적 본령은 역시 회화에 있다 1975년 미국으로의 이주는 원거리에서 조국인 한국의 문화유산을 되새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먼 타향에서 조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의 사찰 건축을 비롯하여 고분, 다완, 실패, 옹기, 한적(漢籍) 등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소재로 이어졌다. 곽훈은 형식으로는 추상 화풍을 취했지만 내용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다루었다
근원으로의 회귀 中
윤진섭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