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쟁이다.
HWANG Young ja | 2019.10.4 – 11.29
Opening Reception | 2019.10.4 4pm, UM GALLERY
Press Conference | 2019.10.21 2pm (Press Only)
Artist Talk | 10월 7일, 15일, 28일 / 11월 4일, 12일, 19일 오후 2시
일요일 및 공휴일 휴무
작가노트
나는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산다.
그림 속이 내 집이다.
생각 속에서 그림이 나오고 생각을 그리다 다음 그림으로 옮겨지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렇게 작품이 태어난다. 내 마음과 머릿속 지나온 추억이 내그림의 자궁이다.
어린 시절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손에 자랐다.
바로 내 및 3살, 2살 두 자식을 연이어 잃고 어머니는 반 미친 사람처럼 깊은 우울 속에서 살았다.
해만 지면 홀로 연못가에 앉아 한없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물에 빠져 죽을까봐
너댓 살짜리 어린 나는 잠도 못자고 어머니를 지키는 그런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나 엮시 일찌감치 내 마음이 고장이 나 있었다.
내 부모는 자기들의 깊은 슬픔 대문에 나를 돌본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어린 딸이 깊은 우울 속에서 맨드라미꽃을 만지며 그 부드러운 촉감에 위로를 받고 울던 딸이
어디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하얀 쌀밥에 긴꼬망 간장(일본식 간장) 넣고 콩고물 넣어서 비벼주고
예쁜 간다꾸(원피스) 입히고 인형만 주면 잘 크리라 생각했을까?
정말 나는 인형에 의지해서 큰 것 같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정신과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고독이 내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평생 내 마음속은 화가 많고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바퀴처럼 기복이 심하다.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항상 뒤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다.
내 시린 가슴은 항상 뻥 뚫려 있고 끝을 향해 달려간다. 지나고 보니 위험한 순간도 많았었다.
그때마다 나를 잡아 준 것이 그림이다.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고자 하는 나를 어떻게 무엇으로 잡아 맬 수 있겠는가.
허수아비 텅 빈 가슴을 그림으로 채워가며 살았다. 본능에 생각을 싣고 감각에 정신을 담아 수많은 세월을 삭히고 닦는 업연으로 인해 선대 인연이 선 듯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걸까.
예술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른 학문은 어떤 교육을 통해서 깨우치며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아차린다면 예술가는 다르다.
배워서가 아니고 누가 뭘 전해준 지식이 아니라 그냥 안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본래 하나라는 걸 몸속 깊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을 망설이며 살았다.
내 칼날 같은 감각이 무너지고 평범해 질까봐 담금질하며 고독하게 살았다. 이제 나이 80이 되니
자신의 노을을 본 것 같고 이 육신의 덧없음을 몸소 무상의 교훈으로 알고 상처 많은 마음을 따르지 않고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Artist Statement.
I live with paintings and inside them.
My home is inside paintings.
A painting comes from my thoughts, and as I paint, thoughts transfer to the next painting and to other thoughts. A painting is born in this way, moving in and out of the past and the present. The memories in my heart and mind form the womb for my paintings.
I was raised by a mother who suffered from depression.
After losing my two younger siblings, aged three and two, one after the other, my mother lived inside a deep well, half out of her mind.
Every night after sunset, I watched my mother sitting along by the pond, crying her heart out. Then four or five years old, I fought sleep to keep watch over my mother, worried she might drown. I developed a broken heart early on in my childhood.
Due to their deep sorrow, I suspect that my parents did not have room in their hearts to look after me.
They did not recognize the deep gloom surrounding their young daughter as I touched cockscomb flowers and cried, finding solace in the soft texture. Unaware that I was broken, did they think I would grow up perfectly if they made me steamed white rice mixed with Kikkoman soy sauce and soybean powder, put me in dresses, and presented me with dolls?
I think I depended on my dolls growing up. Being from an older generation, I never received psychiatric treatment, and loneliness has settled deep in my body. My heart has been full of anger my entire life, and I am unstable like a wheel rolling downhill. Not knowing what to do with my empty heart, I am always in disarray like a tangled skein of thread. My heart, always frigid and hollow, is constantly dashing toward the end. Looking back, there were many dangerous moments. What held me each time was a painting. How and with what could anyone tie me down, when I seek to be free like the wind that passes through the air.
Throughout my life, I have been painting to fill my empty husk of a heart. I wonder if I entered the path of an artist as if to rediscover a relationship from a previous life, as a result of a karmic relationship, aged and honed over countless years of attaching thought to instinct, and injecting spirit into senses.
Art is breaking down the boundaries between fantasy and reality.
In other disciplines, the root of one’s existence is learned through enlightenment from education, but this is not the case for an artist. An artist simply knows, not because she learned or because knowledge has been imparted by someone. It seems to me that an artist understands with her entire being that she and the rook of her existence have always been one.
I have always withdrawn from communing with many people.
I lived a lonely life, tempering the blade of my senses, fearing they might become dull and ordinary. Now that I am eighty years old, I feel as though I have seen my setting sun. Taking the transience of my body as a lesson in meaninglessness, I intend not to be led my scarred heart, but to become its master.
Vogue 6월호 황영자 선생님 글귀
나는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산다. 그림 속이 내 집이다. 생각 속에서 그림이 나오고 생각을 그리다 다음 그림으로 옮겨지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렇게 작품이 태어난다. 내 마음과 머릿속 지나온 추억이 내 그림의 자궁이다.
어린 시절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손에 자랐다. 바로 내 밑 세 살, 한 살, 두 자식을 연이어 잃고 어머니는 반 미친 사람처럼 깊은 우울 속에 살았다. 해만 지면 홀로 물가에 앉아 한없이 우시던 어머니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물에 빠져 죽을까봐 네다섯 살짜리인 나는 잠도 못 자고 어머니를 지키는 그런 유년 시절을 보냈으니 나 역시 일찌감치 마음이 고장 나 있었다. 내 부모는 자기들의 깊은 슬픔 대문에 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여유가 없었으리라. 깊은 우울 속에서 맨드라미꽃 만지며 그 부드러운 촉감에 위로를 받고 울던 달이 어디가 고장 난 줄도 모르고 하얀 쌀밥에 ‘긴꼬망’간장에 콩고물 넣어서 비벼주고 예븐 ‘간다꾸(원피스)’에 인형만 주면 잘 크리라 생각했을까? 정말 나는 인형에 의지해서 큰 것 같다. 나는 ㄴ옛날 사람이라 정신과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고독과 우울이 내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평생 내 마음은 화가 많고 내리막길을 굴러가는 바퀴처럼 기복이 심하다.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항상 뒤엉킹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다.
내 시린 가슴은 항상 뻥 뚫려 있고 끝을 향해 달려간다. 지나고 보니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잡아준 것이 그림이다.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고자 하는 나를 어떻게 무엇으로 잡아맬 수 있겠는가. 허수아비 텅 빈 가슴을 그림으로 채워가며 살았다. 본능에 생각을 싣고 감각에 정신을 담아 수많은 세월을 삭히고 닦은 업연으로 인한 선대 인연이 선뜻 화가의 길로 들어선 걸까?
예술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른 학문은 어떤 교육을 통해서 깨우치며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아차린다면 예술가는 다르다. 배워서가 아니고 누가 뭘 전해준 지식이 아니라 그냥 안다. 자기 존재의 근원과 본래 하나라는 걸 몸속 깊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망설이며 살았다. 내 칼날 같은 감각이 무뎌지고 평범해질까 봐 담금질하며 고독하게 살았다. 이제 나이 80이 되니 자신의 노을을 본 것 같고, 이 육신의 덧없음을 몸소 무상의 교훈으로 삼아 상처 많은 마음을 따르지 않으며 마음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자아 확장의 무대로서의 회화 공간
화가에게 있어서 회화 공간은 그가 추구하는 어떤 리얼리티가 체현되는 장일 것이다. 생각하는 눈과 몸짓으로서의 붓질에 의해 만들어진 2차원의 한정된 이 공간 안에는 화가 자신의 삶과 그 지향점이 압축적으로 투영된다. 그것은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가 되는 유미적인 조형의 장일 수도 있고, 실존의 치열한 흔적이 남겨지는 투쟁의 장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 사회에 대한 증언의 장이 될 수도, 잠재적인 내면세계가 투사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지난 30여 년간 자신을 대상으로 한 자화상을 지속적으로 그려온 황영자에게 있어 회화는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또한 화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무대가 되어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입되는 자화상에는 세계 속에서 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투영되기 마련이다. 황영자의 작업 속에서 작가 자신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몽상에 빠진 예술가인가 하면 상처받고 피 흘리는 인간으로서의 여성, 화려한 옷을 입은 여배우나 락큰롤 스타, 귀족 부인, 신화 속의 반인반수 등 실로 다양하게 변주되어왔다. 그러나 이모습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이 다양한 자아상들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삶의 고통과 무게가 그대로 반영되는 실존적인 자기 인식을 드러내는 한편,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성역할을 짖궃게 비껴가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가두어온 작업실 공간에 대한 메타포라 할 수 있을 사각형 평면을 무대로 삼아,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자아를 끊임없이 확장시켜온 것이다.
<무서운 유혹>(2008)과 같은 작품에서 황영자 자신은 권총을 든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그의 분신을 보호하며 생명의 불씨를 먹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장면은 그의 그림 속 자아상이 현실 세계의 좌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일종의 제의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화영자에 의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분신들은 무대 전면에 서서 주인공이 되는데, 이들은 현실 세계 안에 작동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누락되거나 상실된 욕망들이 소환됨으로써 탄생한 작가의 페르소나들이다. 가부장적 체제 속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던 잠재적 인격들이 무대를 장악하는 배우가 되어, 외부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한 존재감을 부여받는 것이다. 캔버스 평면이라는, 작가에게 절대적인 공간 속에서 주인공의 지위를 얻고 있는 이 페르소나들은 정면으로 관객을 향한 시선을 던지며 세계 안에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확고한 좌표를 설정하고 있다. 황영자는 스스로 그림이라는 무대의 감독이자 배우가 되어 이 페르소나들과 동일시함으로써, 잠재된 심리적 세계와 외부 세계 간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하고 주체적인 자의식을 확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황영자의 작업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인형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셨던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형들을 직업 제작하는 것에 이르게 했다. 황영자가 수공으로 만든 이 인형들은 그의 실제 옷을 축소한 복장을 하고 있어 그 자신의 인격적 대체물로서 존재한다. 이 인형들이 감정적 결핍에 대한 보상 기능을 하는 동시에 분신이 된다는 점은 황영자가 회화 공간 안에 상상의 페르소나를 창조함으로써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현하는 것과도 유사한 매커니즘을 지닌다. 이는 곧 그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것이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는 세계를 스스로에게 선사함으로써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자기 구원의 작업이며, 치열한 존재 확인의 과정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무대가 되는 황영자의 회화 공간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페르소나를 연출하는 코스튬과 소품들의 역할이다. 작품 속 작가가 입은 의복이나 신발, 장신구, 화장은 특정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분장의 효과를 지니는 동시에 회화 평면의 중요한 조형요소가 된다. 예컨대 <공작부인>(2012)과 같은 작품에서 작가 자신은 붉은 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검은 그물망과 붉은 꽃이 달린 모자를 쓴 채 인형을 들고 있다. 여기에서 배경의 노란 꽃무늬 벽지와 색채 대비를 이루면서 풍부한 양감을 만들어내는 붉은 드레스와 그물망의 흑색 세필 표현 작게 반짝이는 색면들인 반지들, 주인공의 내리깐 눈꺼풀 위에 푸른색 눈 화장은 귀족 부인의 위상을 강조하는 동시에 다채로운 회화적 효과를 위한 장치가 된다. <유리구슬>(2015)에서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의 구불구불한 곡면과 빛나는 색점의 시각적 유희를 만들어내는 구슬 목걸이 역시 여배우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식품이자 회화 미학의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이처럼 복장과 장식이 작가가 표현하는 정체성의 기호이자 조형언어가 되는 측면은 흑인들의 피부색이나 그들이 입은 화려한 의복의 장식성을 회화 미학의 형식적 요건으로 삼으면서 인종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케리 제임스 마샬(Kerry James Marshall)의 사례와도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케리 제임스 마샬의 그림 속 복장이 인물의 현실 속 정체성을 주지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황영자의 그림속에서 복장은 실제 자신의 소유물을 활용하는 경우조차도 현실과 상상이 복합된 무대 위의 페르소나를 위한 연극적 소품이 된다. 예컨대 <돈키호테>(2015)에서 섬세한 세공의 색색 니트와 털옷, 붉은 색 꽃무늬 치마, 검은 베레모, 서로 짝이 다른 매끈한 가죽 부츠는 그림 속의 황영자 자신을 시대의 풍운아이자 보헤미안적 예술가인 새로운 돈키호테 상으로 연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더욱이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남성들을 자신을 호위하는 펭귄들로 변형함으로써 현실 사회의 성역할을 호쾌하게 조롱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 ‘매직 카페트’와 같다고 설명한 체스 판 무늬는 시공의 경계를 넘는 상상의 무대를 상징하는 장치로 종종 활용된다. 최근작 <매직 카페트>(2019)에서 체스판 무늬옷을 입고 있는 작가 자신은 가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비롯한 여러 인격들이 공존하는 다중인격체로 표현되었고, 헤드폰을 낀 해골인형을 든 채로 있다. <아바타>(2015)에서는 도플갱어 같은 또 한 명의 여성과 공포영화를 보면서 해골 귀걸이를 귀에 단채 붉은 피 주스를 마시고 있다. 그림 속 작가의 노란 곱슬머리와 대조되는 채도 높은 붉은 입술은 뱀파이어 같은 모습으로 낄낄대는 이 도발적 여성상에 일련의 유쾌함을 부여한다. 이처럼 황영자는 전지전능한 연출자로서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자유로운 시공간을 창조하고, 그 자신을 가부장적 세계가 침해할 수 없는 무대 위의 절대적인 주체로서 내세우고 있다. 조형성을 추구하는 회화 미학이 자아 확장을 위한 무대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바로 이지점에서, 황영자의 회화는 여성주의적이면서도 그가 속한 세대의 여성주의 미술과 차별화되는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주(독립기획자, 미술사가)
A Space within paintings as a Stage of Self-expansion
Lee Eun Joo
Independent Curator, Art Historian
For a painter, the space within a painting is perhaps a place where an ideal becomes a reality. Within the limited two-dimensional space, created through brush strokes following thinking eyes and body gestures, the artist’s life and intentions are projected implicitly. That space could be one of aesthetic forms that create a world of enlightenment, one of turmoil where traces of fierce existential struggles are left behind, one of testimonies of reality as seen by the artist, or one onto which a latent inner world is projected. For Hwang Young Ja, who has produced self-portraits continuously for the past three decades, painting has served as a stage on which she confirmed her identity as a human, a woman, and an artist. Most often, one’s position in the world is projected onto a self-portrait, which is created by gazing at oneself. In her paintings, Hwang Young Ja has appeared in diverse forms, including an artist who is absorbed in daydreaming in a chair in her studio, a woman who is injured and bleeding, an actress or a rock star in a fancy dress, a noble lady, and a mythical half-human-half-beast. These appearances are all closely connected to the artist’s identity. Varying images of the self in Hwang’s works reveal existential self awareness, reflecting plainly the pain and burden of life she feels as a woman. At the same time, they deride society as she veers away from prescribed gender roles imaginatively and mischievously. Making a stage out of the flat rectangle, which might be considered a metaphor for her studio space where she has voluntarily locked herself, she has expanded herself endlessly, unrestricted by society. In Dangerous Temptation (2008), the artist feeds the ember of life to her alter ego, protecting her from the shadow of death, lurking behind with a pistol. This scene suggests that the self-image in the painting has a ritualistic function of protecting and healing herself from the despair in the real world. Given life from the artist, the alter egos take front stage and assume the role of protagonist. These personas are born as a result of the artist summoning the desires that have been omitted or lost in the social relationships at work in the real world. The potential personalities that were not fully realized within a patriarchal system become actresses who seize the stage, where they are given a full presence free from the restraints of the outside world. The personas gain the status of protagonist within the flat canvas, an absolute space to the artist, look straight at the audience, and occupy a coordinate around which the world revolves. By taking the role of stage director and actor on a stage called painting, and becoming one with these personas, Hwang Young Ja has relieved conflicts and tension between the subconscious mental world and the outside world and secured independent self
A consciousness. These relationships are revealed through dolls, which appear frequently in Hwang’s paintings. Childhood memories of playing with dolls that her mother made for her led the artist to make her own dolls, which are like her alter egos. These handmade dolls are wearing miniature copies of the artist’s clothes, representing their roles as the artist’s alternate personalities. These dolls simultaneously compensate for emotional deficiency and serve as alter egos through a mechanism similar to creating imaginary personas in the space within a painting, which embody her ideal self that cannot materialize in the real world. In other words, painting is for the artist a task of saving herself, which enables her to continue living by gifting herself a world that compensates for what she lacks in reality, and a fierce process of existential confirmation. Costumes and props play important roles in Hwan’s paintings, a stage on which she makes herself protagonist. The clothes, shoes, accessories, and makeup on the artist in the portraits have the effect of expressing particular identities and, at the same time, function as important formal elements on the painted plane. For example, in Duchess (2012), the artist is clutching a doll, clad in a red dress and a hat adorned with a red flower and black veil. Here, the red dress, which contrasts with the yellow floral wallpaper background and creates volume; the black lines detailing the weave of the veil; the small, glistening color planes of the rings; and the blue makeup around the woman’s downcast eyes highlight the status of the noble woman and provide colorful painterly effects at the same time. In Glass Beads (2015), the wavy texture of the hair done in a style like Greta Garbo’s and the visual play of the glistening, colorful dots of the bead necklace are both adornments that expresses the identity of the actress and key formal elements that comprise the painting’s aesthetic. Dress and adornments serving as both a symbol of identity and formal language can be found in works by Kerry James Marshall, who uses a black skin color and vivid clothing as stylistic elements as well as expressions of racial identity. However, costumes in Marshall’s paintings remind the viewer of the characters’ real-life identities, while costumes in Hwang Young Ja’s paintings become theatrical props for the personas on stage, combining reality and fantasy even in the cases in which real-life possessions are utilized. For instance, in Don Quixote (2015),the intricate details of the colorful knitwear and fur, the red floral dress, the black beret, and the smooth, mismatched pair of leather boots are used to create a new image of Don Quixote, depicting the artist in the portrait as a soldier of fortune and bohemian artist. In this painting, the artist has transformed men into penguins guarding her, humorously deriding the gender roles of the real world. The chessboard pattern, which the artist has compared to a “magic carpet,” is often utilized as a symbol of an imaginary stage that transcends time and space. In the recent work Magic Carpet (2019),the artist, dressed in chessboard-patterned clothing, has multiple personalities, one of which is singer Freddie Mercury. She is carrying a skeletal doll wearing headphones. In Avatar (2015), she is wearing skull earrings and drinking a blood-red juice. She is watching a horror movie with another woman who seems to be her doppelgänger. In this painting, the artist’s bright red lips contrast her yellow, curly hair and add a certain cheerfulness to this provocative image of a woman snickering like a vampire. In this way, Hwang Young Ja creates, as an omniscient and omnipotent director, time and space that moves freely between reality and fantasy and presents herself as the absolute master of the stage, which cannot be invaded by the patriarchal world. At this very point, where the painting aesthetics seeking formativeness complete the narration on the stage for self-expansion, Hwang Young Ja’s paintings acquire a status that sets them apart from the feminist art of her generation.